20년지기 지인입니다.

정말 착하고 저를 과분할 만큼 좋아해 잘해줍니다.

저한테 가장 잘해준 사람, 고마운 사람을 꼽으라면 이 사람일 정도.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자주 만나다보니 취향과 가치관이 너무 달라 힘드네요.

부잣집 막내딸로 커서 그런지

이런 저런 사정으로 양가 유산도 전혀 받지 못했고

남편도 평범한 월급쟁이인데

비슷한 환경의 저랑 사는 패턴이 너무 달라요.

결혼 전에도 대학원 공부는 힘들고 직장은 싫어서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이 대학 저 대학 10년 넘게 적만 올렸다고 합니다.

아이 사교육에 워낙 열심이었는데

아이가 대학 들어가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무료한 듯 합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학원 등록하고 다니는데

공부보다는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따로 만나 밥 먹고 커피 마시는 게 목적이랍니다.

일주일 내내 외출해 저녁 때까지 사람을 만나고 다녀요.

문제는 저도 거의 매주 만나고 싶어해요.

만나면 점심 먹기 직전에

"이건 꼭 먹어봐야해"라며 유명한 아이스크림이나 디저트 먹어야 하고

점심 먹고 나면 분위기 좋은 커피숍 찾아 커피 마시고

조금 얘기하다 보면 배도 안꺼졌는데 뭐 먹고 싶다고 3~4시에 식당 찾아가 또 먹고

또 다시 커피숍...

자꾸 사주려 하는데 저도 얻어먹기만 하는 건 못 참는 성격이라 

번갈아 가며 내는데도 한 번 만나면 몇 만원 금방 나가네요...

그렇다고 말이 많거나 의욕이 있는 성격이 아니라

그렇게 사람 많이 만나고 다니는 곳 많아도 대화 소재가 없어요.

저는 혼자 공부하고 살림하고 뭐든 열심히 하는 편인데

이 사람은 살림도 전혀 관심 없어요.

주말에도 남편이랑 아침부터 나가서 사먹는다고... 

만나도 먹고 마시는 것 외엔 저 혼자 얘기하는 편이죠.

뭐랄까 그냥 돈과 시간을 쓰며 인생을 무기력하게 흘려보낸다는 느낌.

하루종일 스타벅스에 앉아 있는 게 제일 좋답니다.

물론 아주 사치스럽진 않아요.

그래도 좋은 동네 아파트 한 채 있는 거 말고는

유산도 없고 저금해놓은 돈도 없다며 노후 걱정은 하는데

그렇게 매일 밥 사먹고 커피랑 디저트 먹고 다닐 뿐 아니라

저한테도 그렇고 자꾸 뭘 사주고 퍼주는 걸 좋아해요.

취향에도 맞지 않는 구두랑 옷이랑 자꾸 사주며 안 입으면 삐지고

배부르고 먹고 싶지 않은데 자꾸 뭘 사주겠다고 우기고.

원래는 참 순한 성격이었는데 나이가 드니 고집도 세져 무조건 우기네요.

저도 받은 게 있으니 맘이 고맙긴 한데 그만큼 뭘 해줘야해서 부담스럽고.

요즘 아이도 다 크고 남편 직장들도 불안하고 시간도 남아 뭘 배우고 일을 해볼까 알아보고 있거든요. 

근데 이 사람은 친언니가 학습지 교사를 시작했다고

아무리 어려워도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심해하네요.

전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왔다 해도

집에서 애 키우다 살림 보탠다고 식당 알바나 마트 캐셔라도 하면 대단해보이던데.

워낙 오랫동안 저한테 너무 잘해주고 힘들 때 위로가 됐고 많은 걸 베푼 사람인데다

요즘 몸이 여기저기 많이 아프면서 우울해해서 도움이 되고 싶은데

저도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만남이 피곤하네요.

사람 자체는 너무 고맙고 정이 들어 좋은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