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후반입니다.

나름 명문대 나와 괜찮은 직장에서 상당히 인정받았었죠.

결혼하고 임신했을 때 유산기가 있어 고민하다 그만뒀습니다.

3~4년 육아에 전념하다 지인 회사의 일을 도와주게 됐습니다.

남편이 육아나 가사를 전혀 돕지 않는 사람이라 힘들었지만  

집에서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하는 일이라 직장 다닐 때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똑같이 직장 다니며 나만 가사일 할 때처럼 힘에 부치고 화가 나지 않으니

부부 사이도 내 마음도 훨씬 편했고요.

그래서 예전 직장에서 몇 번 재취업을 권했는데 거절하고

집에서 육아.가사를 병행할 수 있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제가 몸은 약한데 신경이 예민해서 직장 일도 집안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가사와 직장을 병행하면 너무 힘들고 남편이 너무 미워져 가정이 불행해질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아이들도 사춘기가 오락가락하며 불안정했고.

그러다 몇 년 전 골초 남편 덕에 폐암에 걸려 수술을 했고 하던 일을 아예 그만뒀습니다.

그쪽 사정도 안좋아져 어차피 계속 다니기 곤란했고요.

남편은 집에서 손 하나 까딱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저한테 꽤 관대하고 당시 직장에서도 잘 나갔습니다.

암수술까지 하고 나니 아둥바둥 살기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일을 접고 아이 교육과 가사에 전념했습니다.

근데 남편이 직장에서 정리해고 당하고 한동안 집에서 놀았습니다.

이제 다시 직장을 잡았는데 예전만 못한 대우 뿐 아니라 문제가 많은 곳이라 조만간 나오거나 잘릴 것 같답니다.

이제 아이들도 다 커서 손 갈 일이 거의 없고

저도 집에서 살림하며 제 시간을 갖는 것도 그닥 재미 없을 뿐 아니라

노후도 불안해 돈 벌 일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알아보니 쉽진 않지만 예전 직장이나 그 비슷한 곳에 다시 들어갈 수도 있겠더라고요.

근데 대부분 출근거리 1시간 이상인데다 업무 강도가 약하지 않습니다.

몇 년을 집에서 쉬다가 이 나이에 감당이 될 수 있을지...

하지만 지금 나이도 이미 늦었는데 앞으로는 더 시도도 못할 마지막 기회인 것 같고...

다음 대안은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일들도 있는데

시간도 여유롭고 일의 강도도 세지 않아 가사와 병행하기 쉽고 체력적.정신적 부담이 적지만

당연히 급여도 용돈 수준이고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시댁에선 받을 게 한푼도 없고 남편도 얼마나 더 직장을 다닐 수 있을지 모르는데

집안 깔끔히 하고 맛있는 요리 해주며 (주로 무료라 돈을 안들지만) 취미생활로 내 시간 갖고 

약간의 용돈벌이나 하는 게 내 처지에 맞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중간중간 공백은 있었지만 꽤 열심히 살았는데

얼마나 더 산다고 이 나이에 한참 뒤처져서 낯선 직장에 들어가 아둥바둥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어제 남편에게 자리가 난 직장이 너무 멀어 집안일 하면서 힘들거 같다니까

같이 해주겠다는 말 대신 몰아서 하면 되지 않냐면서

애들 학자금도 나오겠지? 하더라고요.

나 혼자 몰아서 하라고? 물었더니 아무 말도 않네요.

요즘 남편도 힘들고 불안한 거 알지만 어찌나 얄미운지 고생하기 싫어지네요. ㅠㅠ